산청(4) - 겁외사(성철스님생가), 산천재와 남명(조식 선생)기념관
성철스님의 많은 흔적이 남아 있는 겁외사
방문앞을 유리로 해 놓은 관계로 사진이 제대로 찍히지 않은 불편이 있다.
< 남명 조식선생의 자취가 스며있는 산천재 >
남명 조식 선생께서 후학을 양성하셨던 곳
남명선생은 높은 학식에도 불구하고 벼슬로 나아가지 않고 초야에 묻혀 평생 많은 업적을 싸으신 훌륭한 유학자
요새로 치면 서울 법대 나와 사시나 행시 하지 않고 박사과정 거치고 교수로 평생 봉직한 분 !
옛말에 이르기를 왕비를 배출한 집안보다 대제학을 배출한 집안이 낫고,
대제학을 배출한 집안보다 문묘 배향자를 낳은 집안이 낫고,
문묘 배향자를 배출한 집안보다도 처사를 배출한 집안이 낫다고 했다.
(유홍준 교수 지음 "나의문화유산답사기"에서 따옴)
남명선생은 회재 이언적이 왕에게 추천하여 헌릉참봉을 내려주었으나 나아가지 않았고,
퇴계의 추천으로 단성현감이 내려졌으나 나아가지 않고 학문과 후학을 양성한 진정한 산림처사(山林處士)로 남았던 분이다.
선조대왕 사제문 국역비(宣祖大王 賜祭文 國譯碑)
산천재 경내에 있는 이비는 남명 조식 선생이 별세하자 선조임금이 '인자한 나라의 큰 어른(大老)이라 칭하며 애도하는 제문을 새겨 세운 비석
남명기념관
중앙에 있는 도표는 신명사도(神明舍圖)
신명사도는 마음의 작용을 마치 임금이 신하를 거느리고 정사를 보는 이치에 비유하여 도식화한 것이다.
문중에서 남명선생에게 제사를 드리는 가묘(家廟)
남명선생의 위패가 보관되어 있는 곳으로 불천위(不遷位)로 지정되어 매년 2월8일 제사를 지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