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선대(설악산) 가는길
토왕성폭포 구경을 마치고 비선대로 가기 위해서 명상길로 접어들었다.
명상길 총거리 : 1.3 킬로미터
소요시간 : 약 한시간
잘 보존되어 있는 숲속을 거닐며 맑은 공기를 마시고 피톤치드를 흡입할 수 있습니다.
남자 나무인 서어나무와 여자나무인 사람주 나무에 대해 알아보고 멀리 울산바위도 조망할 수 있습니다.
그늘지고 평탄한 산책길이 잘 조성되어 있다.
다니는 사람도 적어 혼자 조용히 명상에 잠길 수 있는 여유를 가질 만한 곳이다.
멀리 있는 울산 바위를 줌으로 당겨 잡아 보았다.
울산바위는 둘레가 약 4킬로미터 정도가 되고 높이는 약 870미터 정도 되는 하나의 암석으로 이루어져 있다.
<울산바위 설화>
조물주가 금강산에 일만이천봉 봉우리를 만들기 위해 전국의 바위를 불러 모았습니다.
울산에 있던 울산바위도 이 소식을 듣고 금강산으로 가던 중 거대한 몸집 때문에 날이 저물어 설악산에서 하룻밤을 자게 되었습니다.
다음날 금강산의 일만이천봉 봉우리가 이미 만들어졌다는 소식에 돌아갈 수 밖에 없었는데 고향으로 돌아가자니 너무 창피해서 하룻밤을 보냈던 설악산이 너무 아름다워 지금의 그 자리에 살게 되었습니다.
이름 모를 自由勇士의 碑
< 碑 文 >
지금은 자유의 땅 여기 님 들이 고이 쉬는 설악에 영광의 탑은 높이 섰나니
아 아 붉은 원수들이 성난 파도처럼 밀려 오던 날
조국의 이름으로 최후까지 싸우다가 꽃잎처럼 흩어진 수많은 영 들 호국의 신이여
님들의 이름도 계급도 군번도 누구하나 아는이 없어도
그 불멸의 충혼은 겨레의 가슴깊이 새겨져 길이 빛나리라
천추에 부를 님들의 만세여
언제나 푸른 동해물처럼 영영 무궁할 지어다
한국전쟁때 스러져간 영혼을 위로하기 위해 세운 자유용사의 비 인데
이곳에서 반대편에 섰던 사람들의 죽음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도 없다.
이념과 상관없는 사람들이 대부분인데....
한국 전쟁시 설악산 산악 전투에서 중공군을 맞아 용감하게 싸운 수도사단, 제1사단, 제5사단 소속의 순국장병과 군번없이 참전하여 산화한 학도결사대, 호림부대 용사들의 넋을 위로하고 공훈을 기리기 위해 한국일보사와 제1군 사령부가 강원도의 후원을 받아 건립하였다.
"이름모를 자유용사의 비"라는 휘호는 당시 육군참모총장 김용배 장군이 썼고, 비문은 시인이자 당시 제38사단장 장호강 장군이 지었다.
설악산(雪岳山) 맑은 계류(溪流)
저 바위에 이름 남긴 사람들은 다 이세상 사람들이 아니겄제
이름을 바위에 남기고 가신 분들
비선대(飛仙臺) 계곡
기암절벽 사이로 한장의 넓은 바위에 못을 이루고 있는 곳으로 계곡쪽에서는 미륵봉(일명 장군봉),형제봉,
선녀봉이 보이며 미륵봉 등허리에 금강굴이 보인다.
와선대에 누원서 주변경관을 감상하던 마고선이 이곳에서 하늘로 올라갔다 하여 비선대라고 부른다.
이곳에서 남쪽으로는 천불동 계곡을 지나 대청봉으로 이어지고 서쪽으로는 금강굴을 지나 마등령으로 이어지는 본격적인 탐방로가 있다.
3월15일부터 5월15일까지 산불방지 차원에서 입산통제기간이다.
신록으로 뒤덮이기 시작한 설악의 암봉들이 손짓을 해대건만 그냥 멀리서 눈요기만 하고 되돌아
올 수 밖에 없었다.
귀여운 산골짝의 다람쥐 !
골산(骨 山)의 미(美)
설악동과 권금성을 연결하는 케이블카
아무런 생명력 없는 청동 불상앞에서 손을 합장하고 머리를 조아리는 힘없는 인간 미물들을 어떻게
생각하여야 할까 ?
저 청동불이 인간의 바라는 바를 다 이뤄준다면야 얼마나 좋을까 !
인천상류작전이후 북으로 가려는 인민군들이 산 깊은 설악산에 엄청 몰려들어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곳이다.
설악산의 저 모습에 매료되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
속초의 명물 중 하나
만석 닭강정
줄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만속 닭강정 가게와 봉포 머구리집은 고속버스 터미널에서 그리 멀지 않은곳에 위치하고 있어서
잠시 들러볼 만한 곳이다.
봉포 머구리집에도 많은 사람들이 맛을 즐기기위해 줄을 서서 기다린다.
싱싱함이 있어서인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