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운각(경북 문경 - 박정희대통령 유적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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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문일 : 2016.06.04(토)
소재지 : 경북 문경시 문경읍 청운로 35
박정희 대통령의 자취가 서린 청운각은 문경읍내를 압도하고 있는 멋진 산 주흘산을 등지고 있다.
문경시내에서 보이는 주흘산의 장관
오천년 내려온 가난으로 상징되는 보릿고개를 해결한 지도자이신 박정희 대통령께서 문경 서부심상소학교 교사로 재직 하실때 하숙 하셨던 곳을 복원해 놓은 장소
옛 모습 그대로는 아니지만 장소적 동질성을 우선 해야할 거 같다.
청운각의 유래
이곳 청운각은 박정희 대통령께서 1937년 대구사범학교 졸업하시고 그해 4월 이곳 문경 공립보통학교(다음해에 문경서부심상소학교로 이름이 바뀜) 훈도(訓導: 교사)로 부임하시어 2년 9개월간 거처하셨던 곳이다.
20세의 젊은 나이로 교편을 잡으셨던 무렵은 일제의 식민통치가 극에 이르렀으며 한민족 말살정책은
교육계에서도 예외가 아니었다.
우리의 말과 글, 그리고 역사는 가르치지도 못하게 하였음은 말할 것도 없을 때다.
그러나 민족정신이 남달리 강한 박정희 교사는 여러 제자들을 밤에 놀러오게 한 다음
"우리는 한민족(조선사람)이다. 우리 글 우리 역사를 알아야 한다" 하시면서 단군 후손의 뿌리를
일러주셨으며, 문화민족임을 강조하셨고,
충무공 이순신의 호국정신과 일장기에 태극선을 그리시여 민족혼을 일깨워 주시다가 일본인 교사에게 발각되어 엄청난 수난을 겪다가 급기야 집단폭행 등 대충돌로 천직으로 알았던 교직에서 떠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그때 눈물과 공포에 쌓여있는 우리 제자들의 머리를 어루만지면서 "선생으로는 그놈들을 도저히 이길 수 없으니 총칼을 차고와서 이겨주마....." 하시던 그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다.
이와같은 결과가 만주로 피신케 된 동기가 되었고 군생활이 시작되는 생의 전환점이 되었던 것이다.
가난속에 어렵게 사범학교를 졸업 하시고 배고픔도 면하고 대접도 받을 수 있는 그때의 그 좋은 교사직에 연연치 않고 조선인으로서는 극히 위험한 행동을 연속적으로 하셨던 것이다.
몇몇 제자들도 일본인 교사로부터 매도 많이 맞았던 그 현장이 바로 이곳 청운각인 것이다.
이후 군시절이나 대통령 재임시에 10여차례 못잊어 찾아 오시다가 1978년 11월 24일 마지막 다녀가시고는 파란 많은 생애를 국민의 비통속에 그 많은 치적을 남기신 채 1979년 10월 26일 서거하셨다.
사심없고 굳은 의지와 철학을 가진 민족주의자임에 틀림없었다.
이곳 청운각은 교사에서 군인으로, 그로 인한 후일의 대통령으로서.....숙명적 가난을 물리치고 국력신장의 기틀을 마련하시고 비운의 생을 마치게 된 근원적인 장소이기에.....우리들은 보존하고자 하는 것이다.
우리의 역사는 흘러갈 것이다.
수 천년 수 만년 우리의 역사속에 "우리의 스승인 박정희 대통령은 사심없이 오직 구국위민의 일념으로 일하셨다"고 기록되기를 기원하는 마음으로 이곳 청운각을 보존 하고자 하는 것이다.
문경사람들에게 '박선생'하면 새벽 나팔(트럼펫)소리를 연상한다.
동네사람들은 매일 새벽 잣밭산에서 들려오는 박선생의 기상나팔 소리에 잠이 깨고는 했다. 그는 마을 청년들을 모아 악단을 만들어 출장공연도 했다
청운각 입구에 있는 국화빵집이 아련한 추억속으로 데려간다.
이곳과는 아무 관련없는 박근혜대통령과 결부시키는것은 비약인거 같다.
박정희 대통령께서 하숙생활 하실때 마시던 이 우물은 한동안 사용하지 않았는데 이 우물안 돌 틈사이를 비집고 오동나무 한그루가 뿌리를 내리고 자라다가 제18대 대통령후보 선출이 논의될 무렵 우물밖으로 그 모습을 드러내어 세인의 주의를 끌게 되었다고한다.
누가 심을 수도 없는 우물안에서 스스로 싹을 틔운 이 기이한 나무의 출현을 본 사람들은 모두 놀랐으며, 당시 동아 조선 매일 둥 일간지에도 보도되었다.
나무 주위로 창살을 해놓아 사진을 담아 내는게 쉽지 않았다.
나무의 굵기도 제법되고 키도 큰 오동나무가 있는것이다.
충절의 나무(살구나무)
이 고사목은 1979년 10월 26일 당시 수령이 약 60여년된 고목으로서 박정희 전 대통령께서 서거하신
이틀 뒤 때아닌 살구꽃 두송이를 피운 후 고사 하였다.
이를 지켜본 제자와 시민들은 젊은 시절 함께 생활했던 인연으로 고인의 서거를 슬퍼하다 고사하였다고
하여 "충절의 나무" 로 불려졌으며 안타깝게도 현재 그루터기만 남아있다.
박정희 대통령께서 1978년 11월 24일에 에 기념식수하신 어린 잣나무가 지금은 한참 올려다 보아야 할 정도로 많이 자랐다.
박정희 대통령께서 근무하셨던 문경서부심상소학교(현 문경초등학교)
문경은 1995년 법률 제4774호에 의거 문경군과 점촌시가 도농통합되어 문경시로 되었으며 시청은 문경읍에서 시내버스를 타고 들과 산을 지나 한참을 달려 제법 번화한 옛 점촌 모전동에 자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