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이야기

백두산 탐방

흥렬 2018. 9. 15. 20:53

탐방기간 : 2018.08.23(목) ~ 08.26(일)

 

 

 

 

 

 

계속 우리를 태워다 준 이층관광버스

홍콩에서 운행중인 버스는 아래층에도 자리가 있었지만 이 차는 아래층을  짐을 넣는 공간으로 사용하였다.


 

 

휴게소의 간이 화장실


아직은 시설면에서 한참 멀었다. 이곳이 중국에서 가장 뒤쳐지는 지역이니까 그러려니 해야지...





 

산양 산삼(장뇌삼)을 키우고 있다는 삼밭



 

 

 

두뿌리를 5만원에 가져가라고 선전하고 있다.

중국에서는 도대체 뭐든 믿고 사기가 어렵다.


 

 찐 옥수수를 불에 구워가지고 파는데 배가 출출할때라  공통경비로 사가지고 하나씩 배당을 받았다.

 

 


깨를 발라 구운 호떡 



 

 

이틀밤을 보낸 마운틴스프링 호텔



 

 

 

서파로 가서 백두산 구경을 하려고 했으나, 태풍의 영향으로 기상상태 불량하여 입산이 통제되어 오르지 못하고 이도백하의 온천과 발맛사지를 호텔에서 받으며 하루를 보냈다.




날씨가 회복되어 하루 봉산(封山)하였던 산문이 열리고 북파 산문앞에 운집한 관광객



중국 본토인들도 장백산 관광을 많이 와 엄청나게 복잡하였다.  




입장권을 사는 산문 입구 



 

 

백두산은 높이가 2,750미터로 한반도에서 가장 높은 산이며 애국가의 가장 첫 구절에 나오는 우리 민족의

상징산 이다.



 

입장권 값에는 셔틀 버스비도 포함되어 있어서 순서대로 대기한 버스에 오른다.



 

대형버스를 타고 잘 포장된 도로를 올라 중간에 작은 미니버스로 갈아탄다.



 

천지로 오르는 길이 좁아서 봉고같은 차를 이용하는데 수많은 차량이 천지 코앞에까지 오르 내린다.



 


길이 좋지 않고 날이 차가워지면 얼기때문에 백두산을 찾아볼 수 있는 기간이 4~5개월 정도라고 한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기 전에는 차를 이용하지 않고 등산을 했으나


지금은 지정된 곳으로만 이동해야 하기때문에 반드시 차로 이동해야한다.


 

백두산 여행을 준비할 때 사전에 운동을 좀 해둔다고 아침마다 자전거타면서 근력을 키워왔는데

웬걸 천지 바로 앞에까지 태워다 주는 바람에  허망했다.


많은 사람이 천지를 보는 기대를 안고 올랐지만 구름에 싸인 천지는 아무것도 보여주지 않았다.

천지에 간 사람이 많지만 천지를 제대로 보지 못한 사람이 천지라고 한다.


천지 주변엔 낙뢰의 위험때문에  우산을 쓰지 못하는 고로 비닐 우의를  대부분 입고 오른다.

인천공항으로 향할때  우산과 카메라 밧데리 여분을 챙겨오지 못한 것이 걸렸지만


판쵸를 준비해 와서 우산문제는 바로 해결되었고 카메라 밧데리는 하루를 관광하지 못하고 실내에서 보낸 탓으로 촬영횟수가 줄어 문제되지 않았다.



 

관광객들이 넘어가지 못하게 감시하는 사람이 홀로 안개속에서 보초를 서고 있다.





 화산폭발로 이뤄진 곳이라 현무암지대이다.




 


반짝 반짝 빛나는 것이 작은 보석의 결집체 같다.


 


 

 

 백두산 천지를 제대로 구경하지 못하는 관광객이 많으니 전망이 좋은때 찍은  사진을 보면서 갔다온 것으로

 만족해야겄제...



 

 


 

 

 

 

 이렇게 사진 찍는것으로 위안을 삼을 수 밖에 ~




 


백두산 천지의 물이 흘러내리는 장백폭포

겨울에도 얼지 않으며 높이는 60미터정도

 




장백폭포 가는 길


 

 

 






비가 살금 살금 내리는 날씨로 시야가 좋지 않아서 멀리 보이는 폭포가 선명하지 못하다.


 

 

 

 

온천지대 주변엔  끓어 오르는 온천탕을 보며 많은 사람들이 신비스러운 광경을 보느라 움직임이 없다.




마그마가 지표면 가까이 있다는 것이 실증되는 이곳

물이 보글 보글 끓고 있다. 




유황온천지대 



 

 

 뜨거운 온천수가 흐르고 있다.



 

 

장백산 온천수로 쪄낸 옥수수와 계란이 인기 절정 품목이다.

많이 움직여서 더 먹음직스럽게 느껴지는것이다.

 

 

 

 

 

 

 

 

 

 

(좌로부터) 이계삼, 고광복,  심연구, 노방수, 고영관, 노옥섭, 고희철, 양재인, 박정근, 김중영, 김학섭, 윤정규, 이상은, 고지석, 정해도, 김덕철, 국태모, 윤영기, 박태석, 정주한  20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