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관령
대관령이라 처음 부른것은 16세기 경인데 12세기 고려 시인 김극기는 대관(大關)이라 불렀다.
이처럼 큰 고개를 뜻하는 대(大)자를 붙이고 험한 요새의 관문이라는 뜻을 담았다.
크다의 의미를 사용한 것은 고개의 상징성이며 관(關)이라 함은 중요한 경계적 요새로서 영의 동서를 가르는 출입구를 말한것이다.
《 신 증 동국여지승람 》의 기록대로 대관령이 영동의 진산(鎭山)으로 중앙과 지방, 영동과 영서를 구분하는 지리적 방어적 관문이자 문화적 경역, 상징적 공간이었으며
이곳은 다른 지역으로 들어가는 초입이자 신성한 영역으로 전한다.
풍수가들은 대관령을 자물쇠 형국이라 하는데 이것은 관문으로서 대관령을 넘나 드는것이 쉽지 않았음을 말한다.
그러므로 강릉지역에는 “평생 대관령을 한번 넘지 않고 사는것이 가장 행복하다”고 전한다.
대관령은 영의 동서를 가로지르는 관문으로서 한때 닫힘의 공간이었으나 오늘날에 이르러 ‘열린공간’으로 문화소통의 원류로 자리매김 하고 있고 민속문화의 중요한 유적으로 다시 테어나고 있다.
대관령 관문은 영동권의 방어적 요새로서 신앙적으로 대관령 산신과 성황신 등 수호신이 거처하며 동시에 동서문화가 소통한 통로였다.
잉곳에서 기관 이명화는 1824년 반쟁이 주막을 만들어 힘든 나그네를 쉬게 하였고, 소금장수 선질꾼의 추억이 서린곳이며, 옛 시인과 묵객들이 넘나들며 필명을 떨친 곳 이기도 하다.
급경사 없는 고운 흙길이 이어지는 등산로
마사토가 아니어서 배수가 잘 되는 곳은 아니다.
옛 영동고속도로 대관령휴게소에서 선자령까지는 산길로 5㎞이다
따라서 왕복하는 경우에는 10㎞ 이상 걸을 수 있기에 한여름에 이곳은 좋은 트레킹코스가 된다.
멀리 동해쪽으론 구름에 가려 보이지 않는다.
선자령 주소 : 평창군 도암면 횡계리 산 1-134
해발고도 1,157m
높은 고지임을 알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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