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방일 : 2022.01.01(토)
배 론 성 지
충북도 기념물 제118호
배론이란 지명은 이곳 지형이 배 밑바닥처럼 생긴데서 유래하였으며
한국 천주교회 초기 신자들이 박해를 피해 이곳에 숨어 들어와 공동체를 이루면서 살아왔던 곳이다.
배론성지는 종교적인 면에서 교회사의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의 중요한 역사의 한대목을 이루는 땅이며 교육의 땅이라는 가치를 지니고 있다.
충북 제천읍 봉양읍 구학리에 소재함.
성요셉 신학교
우리나라 천주교 성직자 양서을 위한 첫 신학교
1855년 초 성인 장주기(요셉)의 집에 설립된 성요셉 신학교에서는 프랑수인 푸르티에(Pourthie), 프티니콜라(Petitnicolas) 신부의 지도 아래 김사도요한, 권요한, 유안드레아 등 10여명의 신학생들이 교육을 받았다.
라티어, 철학, 신학 등 워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서양학문을 배운 신학생들이 사제양성의 열매를 맺을 무렵인 1866년초에 박해가 일어났으며,
그 결과 두 신부와 장주기가 각각 서울 새남터와 보령 갈매못에서 순교하였고 신학교는 문을 닫았다.
옛 신학교 건물은 한국전쟁 당시 소실되었으며 현 건물은 2003년에 복원된것이다.
1801년 2월 황사영(알렉시오)은 박해를 피해 이곳에 와서 토굴에 은신하고 있었다.
그는 토굴속에서 순교자들의 죽음을 세계교회에 전하고 박해로 무너진 천주교회의 재건과 신앙의 자유를 얻기 위하여 간곡한 서신(13,384자)을 비단에 써서 북경에 있는 구베아(Gouvea) 주교에게 보내고자 하였다.
그러나 중국에 보내지기 전에 백서는 압수되고 그 또한 체포되어 그해 11월 서소문 밖에서 순교하였다.
백서는 현재 교황청 선교 민속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우리나라 두번째 사제인 최양업(토마스) 신부의 묘가 있는 곳
최양업 신부는 1836년 12월 중국 마카오에 유학하여 신학을 공부하였고 1849년 4월 중국 상해에서 사제 서품을 받았다.
그는 12년 동안 하느님에 대한 굳건한 믿음과 영혼을 구하려는 불같은 열정, 그리고 훌륭한 판단력 등으로 교회를 위해 일하다가 과로로 1861년 6월 문경에서 숨을 거뒀다.
그해 11월 성요셉신학교 뒷산에 묻혀 사제의 길을 걸으려는 후학들의 길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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