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이야기

대만 금문도(2)

흥렬 2023. 9. 25. 19:25

금문도(진먼다오)는 대만 영토이지만 본토와는  떨어진 곳이어서 국내선 항공편을 이용하여 접근해야 한다.

 

비행시간은 대략 50분정도 걸렸다.

 

중국 본토의 샤먼시가 바로 눈앞에 보이는데  엄청 가까운 거리인 2킬로미터 남짓이다.

 

 

진먼다오는 울릉도의 2배정도 되는 면적이고 우리의 서해의  최북단 5개도서가 북한 코앞에 있어서 신경을 건드리는 것처럼  중국의 턱밑에 위치한 송곳같은 존재여서 신경쓰이게 하고 있지만

등소평 등장 이후(1979.01.01)엔  전쟁분위기가 사라졌다고 한다.

 

1982년에  여행금지 조치가 해제되었고 1990년 출입 허가제가 폐지되면서 진먼다오 주민들의 대만출입이  자유로워 졌다고 한다.

 

 

금문도 공항에서 나오자마자 마주친 글자,    처음엔 무슨 의미인지 알기 어려웠으나  금문도를 다 돌아보고나니 저 글귀의 의미를 알 수 있었다,

 

 

금문도에서도 관광버스는 2층버스가 이용되고 있었다.

 

 

특 약 다 실 전 시 관

 

이곳은 금문도에 약10만의 병력이 주둔하고 있을때 군위안소 역할을 하던 역사적 장소이다.

 

이런 시설을 설치한 배경엔  많은 군병력이 집결되어 있는 상황에서 군인들에 의한 민간인 성폭력 사건이 빈번하게 발생한 사실에서 출발하였다.

 

대만군은 금문도 주둔 병력을 위한 이러한 시설을 10여곳 설치하여 운영하였다.

 

 

 

한자로 씌여진 특약다실이라는 것의  영문판 번역을 보면 어떤 장소인가를 알 수 있다.

 

역사를 숨기지 않고 그대로 보존 하는것이 진정한 역사의식이 아닌가 싶다.

 

나무의 모습을 보면 다 말라 비틀어져 있어도 거기에서 새로운 잎이 자라고 있는것이 신비스럽다.

 

 

첸징란 양루

 

첸징란  양루로 들어가는 입구

 

 

1921년도에 서양식으로 멋지게 잘 지어진 건물의 모습이 특이하다.

 

과거 1958년 중국과의 교전이 벌어졌을 때 이곳은 군병원으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싱가포르에서 회계사를 하면서 부동산업에 손을 대가지고 거부를 형성해 가지고 이곳에 멋진 서양 건물을 지었다는 주인공  첸진란

 

 

 

 

 

 

미국 뉴욕의 허드슨만에 있는 자유의 여신상이 여기에도 세워져 있다.

 

 

 

 

 

 

군사용으로 만든  갱도 (성 공 해 방 갱 도)

 

성공은 지역 명칭인거 같은데 바다를 방어하기 위해 만들어진 갱도라고 해석해야 되는거 같다.

 

 

암반이 화강암으로 되어 있어서 웬만한 포격에는 전혀 문제가 없다고 한다.

 

 

 

지하 땅굴이 미로처럼 이어져 있는데 이러한 진지구축에 군병력이 얼마나 힘들었을지 짐작할 만하다.

 

대만군은 군항 ,  비행장,  무기 저장고,  탄약고, 고량주 창고, 주민 4만명이 동시에 생활 수 있는 거주구까지 땅굴로 만들었다.

 

 

해안포를 여기까지 끌고 들어와 방열해가지고  포사격을 한다는것이 보통 힘든 일이 아닌데

상상할 만 하다.

 

 

 

적군의 해안 상륙에 대비하여 설치한 장애물

 

 

 

823 전사관

 

 

 

1958. 08. 23부터  12.02 까지의 기간동안  금문도에서 벌어진 중국의 모택동군과 대만의 장개석 군대와의  금문포격전을  기억하기 위하여 만든 역사관이다.

 

중국군은 215,000명 대만군은 92,000명이 전쟁에 참여하여 중국 인민해방군은 금문도를 점령하려고 엄청난 화력을 퍼부었으나 결국 실패로 끝났다.

 

 

 

이곳 금문도에서는  1979년 까지 중국과 계속 산발적인 전투가 벌어져  수시로 포탄이 떨어졌다고 한다.

 

그래서 지금도 이곳 사람들은 버릇이 들어서 저녁 8시가 지나면 야간 소등을 하고 지낸다고 한다.

 

 

장갑차(M42A1)에  40미리 쌍발 기관포를 거치하였다.

 

 

A!

 

 

중국군과의 전투에서 희생된 장병의 명단이 새겨져 있다.

당시 중국군은 460명, 대만군은 440명이 전사하였다.

 

전쟁이 있어서는 안되는거지만  전사하거나 부상당한 사람들만 불쌍하게 되는거다.

 

155미리 견인포

 

한국전쟁때  미군이 위의 155미리 견인포를 한국군에 원조해 줬어도 포를 다룰 수 있는 포병 병력이 없어서 미국에 가 공부하고 와서야 포를 운용할 수 있었다고 한다.

박정희 대통령도 포병장교 출신이어서 그때 155미리 견인포 운용을 배우려고 미국유학을 다녀왔다.

 

 

 

 

1958년 823포격전때 중국군은 474,910발을 쏘아댔고 대만군은 74,889발을 쏘았다고 하는데 6배 이상의 차이가  난다.

 

2시간 동안  5만발의 포탄이 떨어졌을 만큼 치열한 포격전이 벌어졌어도  화강암 암반에 만들어진 벙커 덕분에 피해를 본 병력이 의외로 적었다.

 

 

금문도 좁은 땅에 떨어진 포탄이 평당 3발이라고 하는데 어마 어마한 포격전이 벌어진 것이다.

그래서 그 전투로 인하여 진먼도의 고도가 2미터 낮아 졌다는 말이 나왔다고 한다.

 

 

1958년 08.23 중화인민공화국 20만 병력과  800여대의 전투기,  600여문의 해안포가 동원되어 42일간의 치열한교전이 벌어졌고  세계최초로 공대공 미사일을 활용한 공중전도 벌어져 미국이 새로 개발한 무기의 우수성을 확인하였던 사실이 있었다.

 

  결국 823 타이하이 포병전투에서 9만명 정도의 적은 병력으로  대만이 거대 중국을 이겼다고 하여  대만에서는 승전을 거창하게 기념하고 있다.

 

 

 

 

 

금문도에 떨어진 포탄이 어어마하게 많아서  포탄 파편을 가지고 아래 보이는 부엌칼을 만들었다고 전시한

것이다.

포탄 탄두를 만든 강철이 단단한 재질이어서 만들어진 부엌칼이 품질이 좋아 관광객들이 기념품으로 많이 사갔다고 한다.

 

상륙작전용으로 쓰이는 LV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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